마흔이 되었습니다.
내 이름은 임소금. 아직은 만 39세 그리고 5개월.
서른 자락의 끝에서 발버둥 치는 마흔 초년생.
30대 마지막 추석이 지났다. 이제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나는 이제 만 나이로도 마흔이 되었다.
까짓것 마흔, 그래 와라.
[프롤로그]
까짓것, 마흔
쿵짝쿵짝 시끄러운 음악이 가득 찬 어지러운 공간,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로 와 레이저빔처럼 꽂힌다.
왜 나는 마지막 순서에 자리를 잡고 앉았던 걸까.
아니다 이건 내가 정한 순서가 아니다.
난 그냥 앉았고 잔인한 운명이 나를 모두에게 주목받게 만들었다.
그들의 눈동자가 나에게 이동하는 그 찰나의 순간에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서울의 젊은이들이 꾸역꾸역 모여든다는 강남 한복판의 힙한감각으로 잘 꾸며진 공간에서 진행되는 워크숍을
신청했을 때부터 인가.
아니면 굳이 잘 쓰지도 못하는 글을 한번 써보겠다고 덤벼들었을 때부터였을까.
건조하던 손바닥골에 촉촉한 기운이 올라올 즈음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른다.
“소금님 차례네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시간을 벌어볼까 했지만, 이미 늦었다.
모두의 눈이 초롱초롱 나를 밝힌다.
내가 이렇게 숫자에 연연했던 사람인가.
하지만 내 앞의 순서에서 내가 한참 전에 지났던 숫자들을 듣고 보니
그동안 숫자 앞에 당당했던 내가 저절로 위축되고 만다.
그래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선조들이 그렇게 귀가 아프게 얘기하시지 않았던가.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메말라있던 목구멍을 가다듬으며 나의 숫자를 말해본다.
“하하, 곧 마흔이 되는 서른아홉입니다.”
“......”
정적은 아주 짧다.
그리고 이어지는 리액션들.
“…. 우와 아아아 아!!! 진짜요?”
“전혀 그렇게 안 보여요!!”
“저보다 당연히 어리신 줄 알았어요!!”
“완전 최강동안이다!”
지난 세월 수없이 들어왔던 내 동글동글한 얼굴에 대한 찬사가 이어진다.
살이 올라 주름살 하나 없는 내 동그란 얼굴은 언제까지 나를 지켜줄 수 있을까.
입천장에서 쌉싸래한 맛이 느껴지는 거 같지만, 내가 할 수 능력 안에서 최대한 눈을 반달로 만들어 웃어 보인다.
그래, 다들 애써줘서 고맙다.
“아니에요~ 아유참.. 감사합니다~~”
내 나이에 대한 어색한 환호가 끝나자 내 스스로가 더욱 어색해진다.
난 언제쯤 마흔과 친해질 수 있을까.
이제 마흔이다. 피할 수 없다.
나이 어린 동기들과 부딪쳤던 술잔 안의 일렁이는 술결이 왠지 서글프다.
나를 서글프게 만드는 건 마흔이라는 숫자가 아니라, 그 앞에서 당당하지 못한 내 모습이라는 걸,
나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태어난 나 임소금. 나에게는 만나이라는 마지막 보루가 남아있다.
마흔의 문전, 만 39세 임소금.
29살에서 30살이 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숫자. 40.
보너스로 주어진 1년, 당당한 마흔이 되어보자.
[ 12월 31일 만 39세 스타트 ]
전 세계에 유일하다는 한국식 나이. 엄마뱃속에서 나오면서부터 1살,
1년이라는 시간은 공짜로 주는 인심 좋은 나라, 대한민국.
그 덕에 꼬이는 족보도 많고, 인간관계 정리도 힘들 때가 많지만,
모두가 공평하게 1년에 1살씩 먹는 나이라는 것에서는 어쩌면 만나이라는 건,
한국이라는 나라가 주는 보너스가 아닐까.
준비되지 않은 20살에 난 아직 만 19세야 하고 도망칠 수 있는 핑계,
30살이 되던 해 병원 진료차트에서 마주한 만 29세 숫자에 아직은 20대를 즐길 수 있게 해주는 보너스.
19살에서 20살이 될 때는 마냥 신이 났고, 29살에서 30살이 될때는 성숙한 여인이 되는 거 같아
엉덩이가 들썩들썩했는데,
39살의 12월 31일 지금의 나는 이 보너스 나이를 먼저 찾는다.
아직은 아니다. 1년, 나에겐 아직 12 달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언니라는 호칭보다 아줌마라는 호칭이 더 잘 어울리는 그날이 올 때까지는.
- 띵동
[너야너내친구 : 야 이제 곧 우리 마흔이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머 하고 있냐?]
함께 마흔이 되어가는 동지에게서 카톡이 온다.
이년은 지금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무슨 일이람.
[나야나임소금 : 나 바빠. 그리고 마흔 아니다. 아직 만서른아홉이다.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라..]
[너야너내친구 : 야.. 그게 더 구차하다..]
절친의 뼈 때리는 카톡을 뒤로하고 이번 달 할부를 다 갚은 아이패드를 열어 하얀 화면을 마주하고 앉는다.
얼떨결에 생긴 보너스 같은 39와 40, 이 사이의 시간을 기록해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