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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눈부신

임소금_EUN graphy 2024. 2. 13. 14:32

 

 

 

그날은 어떤 날이었을까요. 눈도 뜨지 못하게 햇살이 눈 부셨던 날이었었는지, 아니면 앞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안개로 가득 찬 날이었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 음악의 박자에 맞춰 신나게 걸음을 옮겼던 날이었던 것만큼은 오늘 걸었던 발걸음처럼 선명히 기억납니다.

이 음악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어떻게 저의 플레이리스트에서 가장 많이 재생된 곡 상위권으로 올라와 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여러 번의 계절이 지나는 동안, 셀 수 없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곡이란 건 확실합니다.

음악이란 게 참 신기한 힘이 있어서 플레이되는 순간 저를 어떤 시간, 어떤 장소로 데려다주곤 하는데요, 이 음악엔 저의 많은 시간과 순간들이 함께합니다. 싱그러운 초여름 저녁 시간 남자친구와 함께 퇴근길 산책을 하던 어느 길거리로 저를 데려다주기도 하고, 그와 귀가 뜨거워질 정도로 긴 시간 통화하며 밤 산책을 하던 어느 가을날의 시간으로 저를 데려가기도 합니다.

행복한 순간만 이 음악에 담겨 저의 추억이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지만 이 신나고 행복한 곡에도 마음 아프고 눈물이 왈칵 나는 순간들이 함께 합니다. 마음과는 다른 모진 말을 뱉어내고 돌아서서 걸어 집에 돌아오던 날에도 전 이 음악을 들으며 사람 많은 길거리에서 얼마나 흉하게 눈물 콧물을 흘렸던지요. 오히려 신나고 밝은 리듬과 가사가 그날의 저를 더욱 외롭고 슬프게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너무도 많은 시간과 추억, 그리고 순간들이 담긴 이 음악도 사랑의 시절이 끝나가면서 제 플레이리스트에서 점점 재생되는 횟수가 줄어들며 그렇게 잊히는 듯했습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요? 어렴풋이 노래의 분위기와 밝은 리듬 정도만 기억나고 제목도, 아티스트의 이름도 기억이 안 날 즈음의 어느 날, 우연히 알고리즘이 재생해 준 추억의 음악은 시끄럽고 번잡스럽던 영동대로 한복판에서 저를 순식간에 그 사랑의 시절로 데려가 혼자 덩그러니 서 있게 만들었습니다. 더 이상은 함께 이 음악을 들으며 산책할 그가 없고, 아무것도 아닌 얘기에 까르르 웃으며 어깨를 토닥일 그가 없는 그 사랑의 시절로 말이죠.

사랑의 시절에 대해 잠깐 추억해 볼까요?

지금 그와 저를 우리라고 부르기엔 조금 어색하지만, 그 시절엔 우리로 불리는 게 너무 당연한 사이였으니 우리라고 부르겠습니다. 우리는 참 좋은 친구였습니다.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사이였지만, 나란히 앉아 별 시답지 않은 농담에도 자꾸 웃음이 나고, 별것 아닌 이야기로 몇 시간을 이야기 나누던, 흔히 말하는 ‘소울메이트’같은 친구였어요. 시간이 갈수록, 이야기를 나눌수록 ‘친구’라는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사이가 되어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있었죠. 우린 분명히 서로에 대한 호감이 있었거든요.

그는 저에게 참 눈부신 사람이었습니다. 웃는 모습이 참 반짝거려서 가끔은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그의 웃음을 마주할 땐 눈이 부셨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와 어울리는 반짝이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서로에 대한 호감이 가득 차오르던 어느 날 함께 걸으며 들었던 이 음악이 어쩌면 우리에게 용기를 줬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사랑의 시절이 시작되었으니까요. 그 사랑의 시절에 메인 OST를 선정해야 한다면 마땅히 이 음악으로 선정될 겁니다. 우리의 수많은 반짝이던 그 순간에 늘 함께하던 BGM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어떤 시절도 멈추지 않고 흘러가기 마련이고, 행복도 너무 오래 머물면 일상이 되듯이, 서로의 반짝임도 어느새 익숙해져 빛바래 뿌옇게 될 때쯤 우리의 OST도 지나버린 유행가처럼 늘어지고 지겨워져 결국은 더 이상 플레이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다시는 듣지 않을 음악이 될 수도 있었는데 얄궂은 알고리즘 덕분에 그 사랑의 시절로 혼자 돌아가 버리고 말았네요. 혼자가 되어 우두커니 3분 41초 동안 그 사랑의 시절로 다녀오고 나니 지금의 제 모습이 왠지 어색하고 낯설게만 느껴집니다. 이 음악을 다시 듣게 될지도, 게다가 혼자 듣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거든요.

모두의 어떤 시절엔 그 시절의 OST가 있겠죠. 나를 누군가의 반짝임으로 만들어줬던, 함께라는 단어의 영원함을 기대하게 했던 그 시절의 음악, 그 시절이 끝나고 무방비 상태에서 다시 마주한 그 시절의 OST는 쓸쓸함도,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도 함께 가져다주지만, 이제는 그 시절의 나를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주기도 합니다.

너무나 눈부셨던 그날의 저와 그날의 그는 이제는 다시 함께 반짝일 수는 없겠지만, 각자의 인생에서 다른 누군가와 다른 음악을 그 시절의 OST로 반짝이며 살아가겠죠. 이 곡은 다시 몇 번이고 반복해 재생한다고 해도 그와 저를 다시 그 시절의 우리로 만들 수는 없는 음악이 되었으니까요. 아쉽지만, 저도 이제 다음 곡으로 넘어가야겠습니다.

하지만 또 모르죠, 어떤 날, 어떤 순간, 불현듯 이 음악을 만나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지도요.

너무나 눈부셨던 사랑의 시절이 시작되던 날로요.

 

 

 

 

 

https://youtu.be/NSH2E4kLcJo?si=gqAku2PQGkgQE2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