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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눈이 내렸어. 안녕, 이제야 너에게 받은 상처가 메꿔진 건지, 조금은 담담한 마음으로 그날의 내 이야기를 전해. 혹시 기억이 날까, 그날은 눈이 내렸어. 늦은 퇴근을 하던 날이었는데, 아마 내가 처음 맡았던 프로젝트의 미팅이 있던 날이었을 거야. 난 아직 어렸었고, 처음 맡은 미팅에 긴장을 해서 그해 겨울 손꼽히게 추웠던 날이었는데도, 짧은 정장 치마에, 불어오는 찬 바람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던 검정 코트, 출근 기념으로 선물 받았던 골드 뱀피 스틸레토힐을 신었던 거로 기억해. 정성스레 꾸몄던 날이어서 출근하던 길에도, 긴장되던 미팅 시간에도, 온통 네 생각뿐이었어. '퇴근하고 너를 만나야지.' 하고 말이야. 이 마음을 빨리 전하고싶어서 걸었던 전화기 너머로 들리던 너의 기침 소리가 걱정이 돼서 약국에서 잘 듣는다는 감.. 2024. 2. 14.
너무나 눈부신 그날은 어떤 날이었을까요. 눈도 뜨지 못하게 햇살이 눈 부셨던 날이었었는지, 아니면 앞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안개로 가득 찬 날이었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 음악의 박자에 맞춰 신나게 걸음을 옮겼던 날이었던 것만큼은 오늘 걸었던 발걸음처럼 선명히 기억납니다. 이 음악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어떻게 저의 플레이리스트에서 가장 많이 재생된 곡 상위권으로 올라와 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여러 번의 계절이 지나는 동안, 셀 수 없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곡이란 건 확실합니다. 음악이란 게 참 신기한 힘이 있어서 플레이되는 순간 저를 어떤 시간, 어떤 장소로 데려다주곤 하는데요, 이 음악엔 저의 많은 시간과 순간들이 함께합니다. 싱그러운 초여름 저녁 시간 남자친구와 함께 퇴근.. 2024. 2. 13.
아빠의 그라인더 평소의 주말 아침이었다면 늘어지게 자고 있었을 오전 10시 반이지만, 오늘은 11시에 출발하는 광주행 SRT를 놓칠까 정신줄을 부여잡고 호다닥 지하철 출구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연신 핸드폰 화면의 티켓 좌석번호를 확인해 본다. 어정쩡한 표정으로 인사하는 역무원을 지나쳐 두리번거리며 좌석을 찾아 앉은 뒤에야 늦을까 긴장했던 마음이 탁 소리를 내며 풀어진다. 오랜만에 꺼내입은 화려한 플라워패턴의 롱원피스와 찰캉찰캉 소리를 내는 체인핸드백이 어색해서인지 자리에 앉아서도 옷매무새를 이리저리 정리해 보지만, 아침 일찍 서둘렀던 마음처럼 원피스 끝자락도 내 맘처럼 정리가 되지 않는다. 아침부터 서두르는 와중에도 포기할 수 없었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고 나니 곧 열차가 출발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고, 의자.. 2024. 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