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글질(쇠질)을 하실래요?
삼대 몇 쓰시나요?
“여러분, 글근육을 키우시는 겁니다.”
낯선 사람들과 낯선 공간에 모여 낯선 안내자에게 앞으로의 낯선 시간에 대한 안내를 듣습니다. 낯선 안내자에게 ‘글근육’이라는 낯선 단어를 듣고 고개를 갸웃해 봅니다. 도대체 글을 쓰는 근육이 뭘까요?
어린 시절부터 곧잘 글을 잘 쓴다는 칭찬을 들었습니다.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기도 했고요, 중고등학생이 되면서 또래 친구들 안에서는 좋아하던 아이돌을 소재로 한 팬픽을 써서 유통하는 팬픽 작가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어머니가 짧은 시간이긴 했지만, 국어 교사셨기 때문에 기억도 안 나는 어린 시절부터 저는 책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엄마는 어린 저에게도 꽤 엄하게 맞춤법이나 글쓰기에 대해서 가르쳐주시곤 했어요. 아마 제가 한동안 글쓰기에 자신감을 가지고 지내올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엄마의 조기교육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런 제가 어느 날부터 글을 쓰는 게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쓰고 다시 읽으면 반복되는 단어는 왜 그렇게 많고, 진부한 표현들은 또 어쩜 그렇게 많은지, 쓰고 읽고 할수록 제 글이 참 하찮게 느껴지기만 하는 시간이 늘어갔습니다. 그러면서 전 글을 쓰는 일을 두려워하고 외면하게 되었어요. 더군다나 이미지를 그래픽으로 표현하는 직업을 갖게 되면서 점점 글과는 멀어지는 저를 보게 되었죠.
이제는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을 즈음 글쓰기 수업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닮고 싶은 문체를 쓰시는 작가님이 하시는 이 낯선 수업을 신청하게 되었고 생전 처음 들어보는 ‘글근육’이라는 단어를 이 낯선 자리에서 마주하게 된 거죠.
첫 수업의 글근육이라는 낯선 단어의 임팩트를 가득 안고 집으로 가는 길에 어쩌면 글근육손실을 알고 있으면서 내가 외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글근육통이 아파서 피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낯선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저를 따라오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외면하고 도망쳤던 글근육 강화운동을 다시 시작해 보기로 했죠.
눈에 보이는 근육을 키우는 웨이트트레이닝도 영원히 외면하고 싶을 만큼 힘들고 지치는데 어디에 어떻게 붙어있는 줄도 모르는 저의 글근육은 어떻게 단련해야 하는 걸까요? 오늘 만난 그 낯선 안내자가 저의 글근육 PT쌤이 되어주실 수 있을까요? 이왕 글근육을 키워 보기로 했으니, 마음을 단단히 먹어봅니다. 저를 글근육맨으로 만들어 줄 PT샘을 믿고 따라가 보기로 했으니까요.
마음을 먹었다고는 하지만 사실 우리 모두 알고 있잖아요. 무언가를 꾸준히 해나가며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 가는 것은 무척이나, 꽤 어려운 일이라는 걸요.
먼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글을 쓰는 것보다는 나보다 단단한 글근육을 가진 사람들의 글을 찾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꾸준히 써온 그들의 글을 읽는 것은 저에게 또 다른 자극과 훈련이었어요. 다양한 작가님들의 글을 읽으며 어떤 형태의 근육이 나에게 맞는 것인지 찾아가게 되었고요. 탄탄하고 순발력이 좋은 글들을 읽을 때마다 질투와 감탄이 함께 왔습니다. 그들은 도대체 얼마나 단단한 글근육을 가지고 있는 걸까요.
두 번째로 그 단단한 근육을 가진 사람들의 글을 따라 써보기 시작했습니다. 때로는 섬세하고 은유적인 단어들로 속근육을 자극했고, 때로는 단어 안에 숨바꼭질처럼 또 다른 의미를 숨겨두는 위트있는 글을 쓰기 위해 겉근육을 길들였습니다. 물론 제 생각만큼 빠르게 근육이 단단해지지도 않았고, 문장은 여전히 코어를 찾지 못하고 단어 사이사이에 힘이 빠져 축축 늘어졌죠. 그런 시간이 오래되자, 전 슬슬 글근육 키우는 훈련을 외면하기 시작했어요.
사실 지루했어요. 노력해도 늘지 않는 문장력과 여전히 촌스럽고 유치한 저의 문장들을 다시 마주하며 읽는 시간이 좀 괴롭기도 했거든요. 그렇게 한동안 글을 쓰는 시간을 멀리하고 나니 엄마가 주셨던 문과 유전자의 존재감도, 낯선 안내자가 주었던 동기부여도 점자 희미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요리조리 잘 피해 다니며 글근육이 모두 손실되었을 즈음이었을까요. 다양한 글을 쓰는 글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자신만의 철학과 소신을 가지고 본인들의 글을 단단히 만드는 훈련을 해나가고 있었어요. 스스로의 글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피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더라고요.
그들의 반짝이는 펜 끝이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들 덕분에 저도 다시 저의 글을 마주할 용기를 얻었어요. 이 용기가 다시 사그라들까 봐 그때 저에게 글근육의 존재를 알려줬던 안내자를 다시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다정하게 내어준 글키를 받아 들고 저의 글차를 운전해 나가기로 했죠.
전 지금 그 글차를 타고 열심히 달리는 중입니다. 아직 시속이 얼마 나오지도 않고, 운전대에 힘이 없어 비틀거리며 달리기 일수고, 글 액셀러레이터를 누르는 힘도 약하지만, 그래도 아직 브레이크는 밟지 않으려고요.
계속 나만의 글을 쓰며 내 안의 글근육을 조금씩 자극해 나가다 보면 어느샌가 스스로 깜짝 놀랄 만큼 단단한 글근육으로 액셀러레이터를 힘차게 누르고 이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요?
더 이상의 글근손실이 없도록 부지런히 단련해 보겠습니다. 든든한 작가님들 글을 영양제 삼아 읽고, 부지런한 글 친구들의 태도를 보조제 삼아 저의 근육도 단단히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그 끝에 제가 모은 글을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당신에게 선물하는 게 목표입니다. 제가 또다시 저의 글을 외면하지 않게, 글근육을 키워나가는 시간을 피하지 않을 수 있도록 응원해 주세요.
전 꼭 글근육우먼이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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